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폰 만슈타인 (문단 편집) ==== [[바르바로사 작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01I-209-0086-12,_Russland-Nord,_Erich_von_Manstein,_Brandenberger.jpg]] ▲ 1941년 6월, 제8기갑사단장 [[https://en.wikipedia.org/wiki/Erich_Brandenberger|에리히 브란덴베르거]](왼쪽)와 작전을 논의하는 만슈타인. [[1941년]] 독일군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고 [[소련]]으로 쳐들어 갈 때 만슈타인은 북부집단군 소속인 [[에리히 회프너]]의 제4기갑집단 휘하에서 제56 차량화보병 군단장을 맡아 선두에서 진격하며 '''4일 만에 무려 320km를 전진'''하는 놀라운 기동력을 과시했다.[* 오죽하면 자서전의 8번째이자 동부전선 회고 부분 첫 챕터 명이 '''Panzer Drive'''일 정도이다.] 특히 진격 중에 이리메니 강변에서는 [[KV-1]]을 앞세워 공격하는 [[소련군]]을 [[대전차포]] 화망으로 유인한 후에 기갑 부대를 좌우로 재빨리 우회시키는 전형적인 기동 포위진으로 독소전 초기 독일군에게 공포를 안겨 준 [[KV-1]] 29대를 포함해 200대가 넘는 전차를 파괴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레닌그라드 공방전]]에 가담한 만슈타인은 [[레닌그라드]]로 진격 중에 전선 정리를 해야 한다는 히틀러에 명령에 6일 간 그대로 정지해 있어야 했다. [[모스크바]]로의 쾌속 진군 도중에 무리하게 중부집단군을 [[키이우|키예프]] 방면 포위전에 투입한 것과 함께 히틀러가 개입하여 독소전쟁의 향방을 바꾼 최대의 전략적 실수 중 하나로 평가된다.[* [[오토 카리우스]]의 회고록을 읽어 보면 1944년에 레닌그라드 전선에서 전면적으로 반격을 당한 북부집단군은 일반 졸병조차도 1941년에 레닌그라드를 함락해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키예프 방면은 내륙지방인 반면에 레닌그라드 방면은 해안가랑 붙어있었으므로 당시 발트해를 장악중이던 독일 해군에 있어 레닌그라드 점령은 진격으로 인해 길어진 보급선을 해상 보급선으로 커버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고,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게 된다면 소련은 북해로 이어지는 도시가 아르항겔스크밖에 남지 않게 되는데 이는 결국 스칸디나비아 반도 전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양쪽에 있어 레닌그라드는 북해의 운명을 건 곳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